종신보험, '죽어서 받는 돈'에서 '살아서 꺼내 쓰는 돈'으로…생보사 신상품 잇따라
한화생명이 14일 납입보험료 전액을 생활자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종신보험을, NH농협생명이 1일 암 진단 시 가입금액을 먼저 주는 종신보험을 내놓는 등 생전 활용형 상품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700 종신' 판매 중단과 종신보험 수요 감소가 배경으로, 이미 도입된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신청이 대상 계약의 0.6% 안팎에 그쳤다.
생명보험사들이 이달 들어 잇따라 '살아서 꺼내 쓰는' 종신보험을 내놓고 있다. 한화생명은 14일 납입한 보험료 전액을 생활자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필요할때 쓰는 종신보험'을 출시했고, NH농협생명은 1일 암 진단 때 가입금액을 먼저 지급하는 '건강채움NH암종신보험'을 선보였다. 사망 후 유족에게 남기는 돈이라는 종신보험의 성격이 치료비·노후자금 쪽으로 옮겨 가는 흐름이다.
배경에는 종신보험 수요 감소와 금융감독원의 '700 종신' 판매 제동이 함께 놓여 있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었지만, 보장이 넓어진 만큼 보험료와 중도 해지 때의 손실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화·농협·삼성, 한 달 새 '생전 활용형' 잇따라
한화생명이 14일 내놓은 상품의 핵심은 '생애자금인출전환' 기능이다. 보험료를 다 낸 뒤 계약일로부터 20년 안에 신청하면 그동안 낸 보험료 전액을 한 번에 받거나 2~8년에 걸쳐 나눠 받을 수 있다. 회사 측은 일반 종신보험의 중도인출과 달리 전액을 꺼낸 뒤에도 적립금이 계속 쌓이고 남은 사망보장은 평생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사망보험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체증 구조다. 10년납 기준으로 가입 5년 차부터 4년간 매년 15%, 9년 차부터 10년간 매년 5%씩 늘어 최대 210%까지 오른다. 한화생명이 든 예시에 따르면 40세 남성이 월 30만원씩 10년을 내면 납입액은 3600만원이고, 50세에 이를 전환해 한꺼번에 인출할 수 있다. 가입 나이는 최대 65세, 납입 기간은 10년납과 12년납 가운데 고른다.
NH농협생명이 1일 출시한 상품은 보험기간 중 일반암 진단을 받으면 주계약 가입금액의 100%를 먼저 지급한다. 이후 사망하면 가입금액의 100%를 '리필사망보험금'으로 다시 보장해, 선지급금을 합하면 가입금액의 200%를 받는 구조다. 납입기간 중 암 진단 시 이후 보험료는 면제되며, 가입 나이는 조건에 따라 최대 70세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생명도 14일부터 '골든종신보험'을 개편해 판매하면서, 납입 중 암 진단을 받으면 남은 보험료를 면제하고 낸 보험료의 최대 100%를 추가로 꺼내 쓸 수 있는 '암보장형'을 새로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선지급형' 상품이 진단비를 미리 주는 대신 그만큼 유족 몫의 사망보험금을 깎았던 것과 달리, 최근 상품들은 사망보험금을 유지하거나 다시 채우는 쪽으로 설계되고 있다.

'700 종신' 막히자 상품 설계 방향 바뀌어
업계가 상품 구조를 서둘러 바꾸는 데는 감독 당국의 조치가 영향을 줬다. 금융감독원은 9월 21일 전체 생명보험사에 20년납 종신보험 판매 중단과 상품 개선방안을 전달했고, 생보사들은 같은 날 오후 6시 이후 신규 청약서 발행을 멈췄다. 이른바 '700 종신'은 보험료를 20년간 내지만 가입 7년 전후에 해약환급률이 납입보험료의 100%에 이르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SBS Biz 보도에 따르면 관련 상품의 지난해 수입보험료는 95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배 넘게 늘었다. 금감원은 '7년 뒤 원금 환급'을 앞세운 판매가 종신보험을 저축상품처럼 오인하게 만들고, 환급률이 100%에 이르는 시점에 해지가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고 봤다. 과거 비슷한 구조의 상품은 7년 시점에 계약의 82%가 해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납입기간 중 해약환급률이 100%에 도달하는 상품에 대해 해지율 가정을 기존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이도록 했다. 업계는 이로 인해 관련 상품의 보험계약마진(CSM)이 약 1조3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환급률 경쟁이 막히자 보험사들이 '보장 활용'을 새 판매 포인트로 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단기납 줄고 장기납 늘어…숫자로 본 종신보험 시장
종신보험 시장 자체는 위축되는 흐름이다. 경향신문이 인용한 생보업계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종신보험 초회보험료는 3417억원으로 2년 전보다 30.1% 줄었다. 수명 연장과 맞벌이·1인 가구 증가로 '가장 유고 시 유족 생계 보장'이라는 전통적 수요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상품 구성도 바뀌었다. 데일리안이 보도한 삼성·교보·한화·신한·NH농협생명 등 주요 5개사 집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 단기납 종신보험 초회보험료는 1375억원으로 1년 전보다 35.2% 줄었다. 반면 장기납 종신보험 신계약은 26만3917건으로 39.9% 늘었다.
| 구분 | 2025년 상반기 | 2026년 상반기 | 증감 |
|---|---|---|---|
| 장기납 신계약 건수 | 18만8689건 | 26만3917건 | +39.9% |
| 장기납 초회보험료 | 565억원 | 991억원 | +75.4% |
| 전체 신계약 중 장기납 비중 | 31.9% | 52.0% | +20.1%p |
| 단기납 초회보험료 | 2123억원 | 1375억원 | -35.2% |
장기납 종신보험이 상반기 판매를 떠받친 상황에서 그중 상당수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진 '700 종신'이 9월 판매 중단되면서, 보험사들은 하반기 판매 공백을 메울 새 상품이 필요해졌다. 이달 출시가 잇따른 것도 이런 사정과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가족 부양 기간 길어진 것도 배경
인구 구조 변화도 상품 설계에 반영됐다. 한화생명이 인용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평균 초혼 연령은 1995년 남성 28.4세·여성 25.4세에서 2024년 남성 33.9세·여성 31.6세로 높아졌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자녀를 다 키울 때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졌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한화생명은 이에 따라 평균 부양 기간이 약 30년에서 약 36년으로, 가장이 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지는 나이가 58.8세에서 69.9세로 늘었다고 추산했다. 사망보장이 가장 필요한 40~60대에 보험금이 커지도록 하고, 자녀 교육·노후 등 목돈이 필요한 시점에는 적립금을 꺼내 쓸 수 있게 한 것도 이런 계산에서 나왔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10개월간 3300여 건 그쳐
이미 가입한 종신보험을 생전에 활용하는 제도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10월 30일 주요 5개 생보사를 시작으로 '사망보험금 유동화'를 도입했고, 올해 1월 2일부터 전체 19개 생보사로 넓혔다. 만 55세 이상이면서 사망보험금 9억원 이하 금리확정형 종신보험에 가입해 납입기간 10년 이상을 채우고 보험계약대출이 없으면, 사망보험금의 최대 90%를 연금처럼 나눠 받을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11월 말 기준 대상 계약을 약 60만 건, 가입금액 25조6000억원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이용은 저조하다. 매일신문이 인용한 생명보험협회 집계(19개사 중 16개사)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누적 신청은 3300여 건으로 대상 계약의 0.6% 안팎이다.
파이낸셜뉴스가 보도한 주요 5개사 집계로는 제도 시행부터 지난해 말까지 1333건이던 신청이 올해 상반기 1426건에 그쳐, 월평균 신청 건수가 약 640건에서 약 238건으로 63% 가까이 줄었다. 사망보험금 1억원을 70% 비율로 20년간 나눠 받으면 월 수령액이 약 14만원 수준이어서 체감 효과가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입 전 확인할 점
새 상품들은 치료비나 생활자금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보장이 늘어난 만큼 보험료도 높아진다. 상당수가 납입 도중 해지하면 환급금이 적은 해약환급금 일부지급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출 기능도 조건을 꼼꼼히 봐야 한다. 한화생명 상품은 보험료를 완납한 뒤 계약 20년 안에만 전환을 신청할 수 있고, 인출하면 그만큼 남는 사망보험금은 줄어든다. 구체적인 인출액과 잔여 보장은 가입 나이·납입 기간에 따라 달라지므로 상품설명서와 해약환급금 예시표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미 종신보험을 갖고 있는 55세 이상 가입자는 새 상품으로 갈아타기 전에 사망보험금 유동화 대상인지 먼저 확인해볼 만하다.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면 그동안 낸 보험료 대비 손실이 생길 수 있고, 나이가 많을수록 새 계약의 보험료도 비싸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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