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실거주한다며 갱신 거절 후 재임대, 돈 급했다는 이유론 배상 못 피해"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한 뒤 갱신 기간 안에 보증금을 올려 제3자에게 세놓았다면, 다른 집 보증금 반환 등 자금 사정만으로는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려면 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던 사정과 제3자 임대의 불가피성이 모두 필요하다고 봤다.
집주인이 직접 살겠다며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한 뒤 갱신 기간이 끝나기 전에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놓았다면, "급하게 돈이 필요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세입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세입자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지난달 확정했다고 법률신문과 경향신문 등이 12일 보도했다. 법률신문은 원심 확정일을 9월 10일로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판결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집주인의 배상 책임 예외로 둔 '정당한 사유'의 요건을 대법원이 처음 제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법원은 갱신을 거절할 당시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이 생겼고, 그 때문에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것이 불가피했어야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다고 봤다.

"직접 살겠다"던 집, 1년 2개월 뒤 다시 전세로
보도를 종합하면 세입자 A씨는 2020년 7월 집주인 B씨와 계약을 맺고 2020년 9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 보증금 6억6000만원 전세로 살았다. 계약 만료를 4개월가량 앞둔 2022년 5월 A씨가 갱신을 원했지만, B씨는 본인이 실제 거주하겠다며 거절했고 A씨는 계약 만료에 맞춰 집을 비웠다.
해외에 머물던 B씨는 2022년 9월 이 아파트에 전입신고를 했고, 2023년 2월 귀국해 2024년 4월까지 약 1년 2개월을 실제로 살았다. 이후 같은 아파트를 보증금 8억2000만원에 새 세입자에게 전세로 내줬다. 갱신이 거절되지 않았다면 A씨는 2024년 9월까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집주인이 갱신 기간이 끝나기 약 5개월 전에 제3자에게 임대한 셈이 됐다.
| 시점 | 내용 |
|---|---|
| 2020년 9월 | A씨, 보증금 6억6000만원에 2년 전세 입주 |
| 2022년 5월 | A씨 갱신 요구, B씨 실거주 이유로 거절 |
| 2022년 9월 | A씨 퇴거, B씨 전입신고 |
| 2023년 2월~2024년 4월 | B씨 귀국 후 약 1년 2개월 실거주 |
| 2024년 4월 이후 | 새 세입자에게 보증금 8억2000만원 전세 |
| 2024년 9월 | 갱신됐다면 A씨 계약이 끝났을 시점 |
1심은 집주인, 2심·대법원은 세입자 손 들어줘
B씨는 재판에서 남편과 함께 가진 다른 주택의 세입자 6명이 한꺼번에 보증금 약 6억9000만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다시 세놓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B씨는 소득이 없어 대출이 어려웠고,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가 약 3억원 나온다는 점도 들었다.
1심은 2022년 말 전세사기 사태 여파로 세입자들이 동시에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 것은 예측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며 집주인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판단을 뒤집었다. 다른 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무는 갱신 거절 전부터 있었고 만기에 돌려줘야 한다는 점도 예상할 수 있었으며, 아파트 임대는 보증금을 마련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는 이유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2심이 인정한 배상액은 3079만원이다.
대법원도 정당한 사유를 증명할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전제한 뒤, B씨가 내세운 사정은 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던 일이 아니었고 제3자 임대가 불가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2020년 도입된 갱신요구권과 손해배상 규정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이른바 '임대차 3법'의 하나로 2020년 7월 31일 시행됐다. 세입자는 한 차례 갱신을 요구해 2년 더 살 수 있고, 갱신 때 임대료 인상률은 5% 이내로 묶인다. 2020년 12월 10일 이후 맺거나 갱신한 계약은 만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갱신을 요구해야 한다.
집주인은 본인이나 직계 가족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등 법이 정한 사유가 있으면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다만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은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해 놓고 갱신됐을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임대하면 세입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은 이 '정당한 사유'의 문턱을 높게 잡은 셈이다.
배상액은 같은 조 제6항에 따라 당사자 간 미리 정한 합의가 없으면 세 가지 금액 가운데 가장 큰 금액으로 정한다. 보증금을 월세로 환산한 '환산월차임'을 기준으로 계산하며, 전세처럼 보증금이 큰 계약은 보증금을 월 단위 차임으로 바꿔 따진다.
| 구분 | 산정 방식 |
|---|---|
| 1호 | 갱신거절 당시 환산월차임의 3개월분 |
| 2호 | 제3자에게 임대해 얻은 환산월차임과 갱신거절 당시 환산월차임 차액의 2년분 |
| 3호 | 갱신거절로 임차인이 입은 실제 손해액 |
이번 사건처럼 새 보증금이 기존보다 1억6000만원 높아지면 2호 방식으로 계산한 금액이 커질 수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23년 12월 7일 선고한 2022다279795 판결에서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 역시 임대인이 증명해야 하며, 단순히 실거주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서울 아파트 갱신계약 늘고 갱신권은 아껴 쓰는 분위기
갱신요구권을 둘러싼 분쟁은 전월세 시장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파이낸셜뉴스가 보도한 부동산R114 분석에 따르면 2026년 1~3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6만451건 가운데 기존 계약을 연장한 갱신계약은 2만8251건으로 46.7%를 차지했다. 2025년 1분기 39.7%보다 높아졌다.
같은 분석에서 2026년 1분기 갱신계약 중 갱신요구권을 쓴 거래는 1만2242건, 쓰지 않은 거래는 1만6009건으로 미사용 비중이 56.7%였다. 갱신요구권은 한 번만 쓸 수 있어 임대료가 더 오를 때를 대비해 아껴 두는 세입자가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 기간 | 전체 거래 | 갱신계약 | 갱신계약 비중 |
|---|---|---|---|
| 2025년 1분기 | 6만4536건 | 2만5629건 | 39.7% |
| 2026년 1분기 | 6만451건 | 2만8251건 | 46.7% |
세입자·집주인이 알아둘 점
세입자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했다면 이사 뒤에도 그 집에 누가 사는지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갱신됐을 기간 안에 제3자에게 임대된 사실이 드러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이번 판결에 따라 집주인이 단순한 자금 사정을 이유로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려워졌다.
집주인도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할 때는 갱신됐을 기간 동안 실제로 살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갱신 거절 당시 이미 알고 있던 대출 상환이나 다른 집 보증금 반환 같은 사정은 나중에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취지다. 구체적인 분쟁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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